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웃은 죄(罪) - 김동환(1901~?)

웃은 죄(罪) - 김동환(1901~?)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한모금 달라기에 샘물떠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지요.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북방 시골마을 우물가에 수줍은 처녀가 있다. 나그네가 지름길 묻기에 처녀는 대답하고,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단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진술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난 모르오/웃은 죄밖에”라고 처녀는 말한다. 과감한 서사의 생략을 통해 역설적으로 처녀와 나그네 사이에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음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앙큼한 처자가 있을까. 수줍은 듯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북쪽 시골처녀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은밀한 사랑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나그네와의 천진하고 깜찍한 사랑이 담긴 해학적인 시를 읽으며 시골 우물가에 있을 법한 옛 시절의 처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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