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 조지프 퓰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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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4일 금요일

란 꽃에 대한 단상






란 꽃의 대한 단상
거제상문고 교사 강준호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650분쯤 4층 진학실 문 앞에 섰다. 3학년 1반 우리 반을 쳐다보니 어김없이 불이 켜져 있고 책상 끄는 소리가 들린다. 항상 일찍 등교해서 교실 청소를 하고 격언을 칠판 가장자리에 적어두는 학생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소리다. 3 학년실을 들어서니 퀴퀴한 냄새가 난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지금까지 맡아 보지 못했던 퀴퀴한 냄새 가운데 은근한 냄새가 섞여 난다. 무슨 냄새일까 기분 나쁘지 않게 내 코를 끄는 냄새. 퀴퀴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까지 이끄는 냄새.
 
3월 초 교장 선생님께서 란 하나를 주셨다. 교장 선생님 부임 인사로 선생님의 지인으로부터 보낸 온 화분들이었다. 키우지 못하고 죽이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어 망설였다. 교장선생님이 교장실 안에 화분들을 늘어놓고 가져가라고 하셨다. 하나라도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휩쓸렸다. 예쁘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화분에 잎이 무성하니 보기만 좋은 것을 골랐다. 나는 ‘종류를 모른다. 하동금남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학교 근처 금남에 조립식 건물에 집사람과 아들과 딸과 함께 살았다. 우리 집주인이 란을 키웠는데 취미가 아닌 사업이었다. 그 때 집주인은 나를 볼 때마다 에 대한 이야기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취미로 을 키워 볼까 생각도 했다. 집주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생각은 사라졌다. 란이 애물단지로 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에 대해 관심을 끊었다. 그 당시 집주인의 억설로 얻어 들은 란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 잊었다. 내가 실천할 수 없는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나라 란의 90프로는 산 천지에 피어있는 춘란이라고 했었다. 아마 내가 선택한 화분도 춘란일 것이라 확신한다.
 
22교무실 구석 내 자리 뒤에 사물함 위에 란을 두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기본적인 생육 방법으로 란을 키웠다. 내가 하는 일은 키우기 보다는 관리에 가깝다. 관리하는 방법은 물을 줘야 한다. 매일 주면 안 된다. 가끔 줘야 한다. 한 번 물을 줄 때는 흠뻑흠뻑 줘야 한다. 햇볕도 쬐었다. 직사광선은 안 된다. 그늘도 만들어 줘야 한다. 매일 창문을 열어서 바람도 쐬었다. 나는 나름대로 관리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란 잎이 무성해지는 것 같더니 점차 말라죽는 촉들이 생겼다. 말라 죽은 촉은 뜯어버렸다. 무성하던 란이 점차 화첩에 나오는 란같이 날씬해져갔다. 말라죽는 이유는 아마 인사철에 많은 란들이 필요했던 주인이 여러 촉의 란을 한 화분에 모아 무성하게 보이게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나마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 란 촉들은 나의 기본적인 관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말라 죽는 것을 선택한 것 같다. 

세월이 흘러 학년이 바꼈다. 3학년이 되어 4층 진학실로 자리를 옮겼다. 옮기면서 란을 버릴까 생각하다가 란과 같이 자리를 옮겼다. 3학년 진학실의 란 자리는 2층 교무실 보다는 좋아졌다. 햇볕도 바람도 물도 충분하게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란은 비가 오면 좋아한다. 비가 오면 나도 란 촉과 같이 덩달아 활기차다. 계속해서 관리를 했지만 여전히 죽은 촉이 생겼다. 죽은 촉은 가차없이 뽑아버리고 남은 촉만 관리를 했다. 죽은 촉을 뽑아 버리고 나니 화분의 전체적인 균형이 깨졌다. 화분 한 쪽으로만 11촉 남았다. 다행히 남은 촉들은 생기가 넘친다. 란 촉들이 뭔 일을 저질을 것같이 활기가 넘친다.
 
태양과 지구는 한 번도 고요하게 정지한 적이 없다. 충만한 대기(大氣)의 활동운화(活動運化)에는 잠시의 정지도 없으며, 인물에 흐르는 혈맥은 순간이라도 움직이지 않음이 없다. 이와 같이 왕성하게 돌아서 움직이는 가운데 어찌 일사일물(一事一物)이라도 운화를 따라 변동하지 아니함이 있겠는가?(최한기)

어느 날 문득 란 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주 우리 아버지의 집에 가면 항상 군자란의 꽃들이 피어있다. 란 꽃 보기가 힘들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항상 꼭을 피우신다. 아버지 어머니 집에 가기만 하면 두 분 동시에 이번에도 군자란 꽃이 피었다면 보라고 자랑하신다. 나는 무표정하게 반응하지만 아름다운 란꽃을 무시할 수 없다. ! 정말 아름다운 란꽃이 피었네요! 꽃은 예뻤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 집에 화분이 많은데 화분 마다 꽃이 활짝 피었던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서 꽃을 피우는 비밀은 아버지의 마음과 꽃들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 칭찬 잘 안 하시는데 이 부분에는 무한정으로 사랑스러워 하신다. 나도 아버지께서 피웠던 란 꽃과 같은 꽃을 보고 싶다. 나도 란과 스스로 그러하고 싶다. 
 
란 꽃은 보려면 란을 괴롭히면 된다고 한다. 겨울 날씨가 혹독하면 그 겨울 다음에 봄에는 어느 해보다 더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생존 본능을 자극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란을 괴롭히면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그 란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마음과 란의 마음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했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며, 그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고, 그 신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고, 행할 적에 그 하는 일을 어그러지고 어지럽게 하나니, 이는 마음을 움직이고 성품을 참아서, 그 능하지 못한 것을 더 능하게 함이다.(맹자)
 
4층 3학년 진학실 내 자리에서 조그마한 창밖을 보면 오작교가 보인다. 그 너머로 여러 개의 산마루가 보인다. 우리 학교 교사가 3동이 있는데 2동과 3동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 그 통로를 학생들은 오작교라 부른다. ‘만남의 장소오작교. 내가 알고 있던 오작교는 사랑이고 통일이었다. 3학년 진학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치는 산마루에 운무가 자욱하면 그런대로 볼 만하다. 평소 때는 산마루의 송전탑이 산을 가려 갑갑하다. 4층 진학실 창밖에서 조망할 수 있는 산마루들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다.

내 마음과 란의 마음이 스스로 그러해야 한다. 드디어 란 꽃대가 피었다. 저세히 살펴보니 꽃망울이 다섯 개다. 다음 날이 되자 꽃봉오리가 다섯 개다. 다음 날에 한 송이가 피었다. 두 송이가 피었다. 다섯 송이 모두 피었다. 란 냄새와 란 꽃들을 아침마다 사진에 담았다. 날마다 날마다 새롭다. 이제는 시간마다 새롭다. 찰라가 새롭다. 창문안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보면 그 바람을 타고 란 꽃 냄새가 나의 코에 스친다. 란꽃 냄새가 그윽하다. 란꽃 냄새가 은은하다. 냄새와 꽃이 물리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다. 함께 냄새와 꽃에 취하고 싶다. 나와 란의 원초적인 본연의 심연과 만난다. 나와 란이 스스로 그러하다. 냄새와 꽃이 멋있구나! 꽃과 냄새가 맛있구나! 나와 냄새와 꽃과 마음껏 취하고 싶다. 스스로그러한 것들과 물심일여로구나!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웃은 죄(罪) - 김동환(1901~?)

웃은 죄(罪) - 김동환(1901~?)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한모금 달라기에 샘물떠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지요.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북방 시골마을 우물가에 수줍은 처녀가 있다. 나그네가 지름길 묻기에 처녀는 대답하고,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단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진술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난 모르오/웃은 죄밖에”라고 처녀는 말한다. 과감한 서사의 생략을 통해 역설적으로 처녀와 나그네 사이에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음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앙큼한 처자가 있을까. 수줍은 듯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북쪽 시골처녀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은밀한 사랑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나그네와의 천진하고 깜찍한 사랑이 담긴 해학적인 시를 읽으며 시골 우물가에 있을 법한 옛 시절의 처녀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