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일 일요일

제삼 소학도




소학제사 (小學題辭)
小學 ; 개인도덕 수양서, 주로 개인적인 수양을 위해 배우는 유교 교과서, 大學과 대비 부모공경 마음 바로잡기 등에 대해 주자가 저술함,
; 제목, 머리말, ; , 말하다,
소학제사 설명
(), (), (), ()은 천도의 상, 즉 하늘의 불변의 법칙이고, (), (), (), ()는 인성의 강() , 인간의 벼리가 되는 본성이다.
이 인간의 본성들은 원래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네 가지 단서인 "사단"이 풍성히 감동됨에 따라 드러난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히 대하는 바로 이것이 "병이(秉彛)"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순리적으로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인만이 그 본성이 자연적으로 실현되어 하늘과 같이 넓어서, 털끝 만큼의 힘으로 더하지 않아도 "온갖 선함(萬善)"이 다 갖추어진다.
일반 사람들은 어리석어 물욕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그 도리를 무너뜨리고 서슴없이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다. 성인이 이것을 가엾게 여긴 나머지 학문을 만들고 스승을 두고 가르치어 그 본성의 뿌리를 북돋는 한편 그 가지를 뻗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은 쇄소(灑掃)하고 응대(應對)하며,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남에게 공경하여 행동이 조금도 법도를 어김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완전히 행하고 난 다음에 힘이 남으면 시를 외고, 글을 읽고, 노래를 읊조리고, 춤을 추며 모든 생각이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이 법의 궁구와 깊이 생각하여 몸을 닦음이 이 학문의 큰 뜻이며 목적이다.
밝은 명(明命)은 환하여 안팎이 없다.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야 곧 본래의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이 옛날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하여 오늘날 어찌 넉넉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세월이 멀리 흘러왔고, 어진 사람들이 돌아갔는데다 경전들은 피폐되고 교육마저 해이해져, 어린이의 양육이 바르지 못하매, 자란 뒤에는 더욱 부박하고 사치스러워진다.
마을에는 좋은 풍습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어진 인재가 없으며, 사리 사욕으로 뒤얽혀 싸우고 이단의 말들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병이는 하늘에 표준을 둔 것이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옛날에 들어온 말들을 주워 모아 뒷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하노라.
애달프다! 소년들이여! 삼가 이 글을 배우도록 하라. 이것은 늙은 나의 노망한 소리를 적은 것이 아니라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대가 사람에게 [대학]의 도를 말하려 하면서도 또 [소학]의 글을 참고하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었다.
주자는 그말을 듣고 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배움의 크고 작음은 확실히 같지 않으나 ''가 되는 점에 있어서는 한 가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에 [소학]에서 익히는 것이 없으면, 그 방심을 거두고 덕성을 길러서 [대학]의 기본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커서 [대학]을 더 배우지 않는다면 의리를 살피고 그것을 사업에 시행함으로써 [소학]의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린 학도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쇄소응대하든가 진퇴하는 가운데, (((((()의 학습들에 스스로 진력함으로써, 자라난 뒤에는 '명덕''신민'하는 일에 나아가 '지극히 선한 경지'에 까지 가서 머물게 하려는, 이것이야 말로 순서상 당연한 것이니, 어찌 불가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또 "만일 나이가 이미 자랐는데 공부가 이렇게 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고 하자, 그에 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이미 지나간 것은 물론 뒤따라 갈 수 없지만, 공부의 차례나 조목은 어찌 다시 보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듣기로는, ''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의 시초와 종국을 성립시켜 주는 것이라 한다. [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을 기 초로 하지 않으면, 참으로 본원을 함양하여 쇄소·응대·진퇴에 관한 법도 및 육예의 가르침에 마음을 쓰지 못하게 된다.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역시 총명을 개발하여 덕을 닦고 학업을 익히어 '명덕', '신민'의 공을 가져오지 못한다. 불행히도 때가 이미 지난 뒤에라도 배우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것에 힘을 기울여 큰 것을 닦아 나아가게 되는 동시에 그 작은 것을 겸하여 보충할 수 있다면, 그 나아가게 하는 소이로서는 장차 근본이 없어서 스스로 도달하지 못 할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퇴계선생 말씀
위의 [소학]은 옛날에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신이 삼가 본서의 목록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서 대학의 그림과 대조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자가 [대학혹문]에서 [대학], [소학]에 대하여 통론한 것을 인용하여 양자의 공부하는 대강을 나타내었습니다.
원래 [소학][대학]은 서로 상대적으로 기다리면서 성립합니다. 이것들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혹문]에서는 그것들을 통론할 수 있었고, 이 두 그림에서도 겸수상비하여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제이 서명도





서명 (西銘) ; 西 ; 서녁 서, ; 새길 명, 마음에 깊이 새김,
서명 설명 ; ()을 부()라 하며, ()을 모()라 한다.
나는 매우 작은 존재로서, 혼연히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지사이에 들어찬 것은 나의 몸이며, 천지를 이끄는 원리는 나의 본서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의 동포이며, 모든 사물이 나와 같은 족속이다. 임금은 내 부모의 종자(宗子)이며, 대신은 그 종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는 것은 그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근본이며, 외롭고 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 어린이를 어린이로 보살피는 근본이다.
성인이란 그 덕이 천지와 더불어 합치되는 사람이며, 현인이란 빼어난 사람이다.
무릇 천하의 늙어 허약한 사람이라든가, 병들어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든가, 형제가 없는 사람이라든가, 혹은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든가, 혹은 홀아비나 과부와 같은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들은 모두 다 나의 형제가 심히 곤란한 처지를 당하고서도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때로 하늘의 뜻을 보존하는 것이 내가 천지의 아들로서 천지를 공경하는 것이며, 일상 즐거워하고 근심하지 않는 것이 효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천명을 어기는 것을 패덕(悖德)이라 하고, 인을 해치는 것을 적()이라 한다. 악한 일을 더하는 자는 부재(不才)이고, 천지로부터 받은 천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오로지 부모를 닮는 자이다.
천지의 조화를 알면 그 천지 부모의 사업을 잘 계속하며, 그 조화 속의 신묘함을 다 궁구하면 그 천지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방 구석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이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며,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이 부모를 섬기는 데 게으르지 않음이다. 맛 좋은 술을 싫어하는 것은 우가 어버이를 돌보는 것이며, 영재를 기르는 것은 영
봉인이 그 효자의 동류를 길이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고생되어도 효성의 마음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순의 공이며, 도망할 곳 없는 듯이 죽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신생의 공경함이다. 주신 몸을 온전하게 가지고 살다가 돌아간 사람은 증삼이며, 따르는 데 용감하여 명령에 순종하기로 손꼽힐 사람은 백기이 다.
부귀와 복택은 장차 나의 삶을 두텁게 할 것이며, 빈천과 우척(優戚)은 너를 옥성(玉成)시키는 것이다. 살아서는 천지와 부모를 순하게 섬기다가 죽게 되면 나는 편안히 돌아갈 것이다.
주자가 말했다. "[서명]이란 정자에 의하면 하나의 이가 다양하게 나누어짐을 밝힌 것이다. 대체로 건으로 아비를 삼고, 곤 즉 땅으로 어미를 삼는 것은 생물이라면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이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및 동물 등 혈맥을 가진 생명체의 무리들은 각각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고 그 자식을 자식으로 키우고 있으므로, 그 분별됨에 있어서는 어찌 서로 다르지 않겠는가! 하나로 통일되면서도 만 가지로 각기 다른 까닭에, 비록 천하가 한 집안이고 중국이 한 사람과 같다고 하더라도 겸애의 패단에 흐르지 않는 것이다.
만 가지로 각기 다르면서도 또한 하나로 관통되므로, 비록 친하고 소원한 정의 차이가 있고 귀하고 천한 등차가 있다 하더라도 "위아"의 사사로움에 막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서명]의 대의이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씨를 미루어 무아의 공덕을 기르고,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을 바탕으로 하늘 섬기는 길을 밝힌 것을 본다면, 무룻 어디를 가든지 이른바 "분계에 서서 이가 하나임을 미루는 것"이 아님이 없다" 했으며, 또 주자는 말하기를 "[서명]의 앞부분은 바둑판과 같고, 뒷부분은 그 판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서명]은 하나인 이가 다양하게 나뉘는 것을 말한 내용의 것이다. 그 이가 하나임을 아는 것은 ""을 실행하게 하는 까닭이며, 그 이가 다르게 나뉨을 아는 것은 ""를 행하게 하는 까닭이다. 이것은 마치 맹자가 "어버이를 사랑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남들을 사랑한 다음에 사물을 사랑한다"고 한 것과 같다. 그 분수가 같지 않기 때문에, "내가 베푸는 것에도 차등이 없을 수 없다"고 하였다. 쌍봉요시는 "[서명]의 앞 일절은 사람이 천지의 아들임을 밝힌 것이며, 뒤 일절은 사람이 천지
를 섬기는 것을 마치 자식이 부모 섬기듯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퇴계선생 말씀
위의 명은 횡거 장자가 지은 것입니다. 처음에 "정완"이라 이름하였는데, 정자가 이름을 바꿔 [서명]이라 하였고, 거기에 임은 정씨가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성학의 목적은 ""을 찾는 데 있습니다. 모름지기 인의 뜻을 깊이 체득해야만 바야흐로 내가 천지 만물과 한 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실로 이와 같은 경우라야 인에 대한 공부가 비로소 친절 유미하여져서, 광대 무변함에 손댈 바를 모르게 되고 걱정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물을 곧 나인 줄 잘못 아는 병통이 없어 심덕이 온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서명]이야말로 그 뜻이 지극히 완비되었으니, 이것이 곧 인의 체이다"라고 하였고, "이 인이 남김없이 충만될 때 성인이 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